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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남산 무정차 업힐 성공 두 번


자전거를 타다 보면 꼭 넘어야 할 통과의례라고나 할까... 관문이라고나 할까...

그 비슷한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서울에 사는 라이더들에게는 "남산 업힐 무정차"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무정차 남산 업힐"

 

남산을 6분만에 올라가고도 너무 싱겁다고 또 올라가는 짐승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저같은 저질 엔진에게 남산(주차장+휴게소 기준 해발 225m)을 무정차로 올라가는 것은

평생 바위를 굴러 올려야만 하는 시지프스의 고통과도 맞먹는 것입니다.

 

작년 초여름 땡볕에 알로빅스 500+로 도전을 해보았지요.

물론 기어는 1*1...

남산은 고사하고 한남대교에서 국립극장까지 가는 고갯길에서 벌써 초죽음이 되었습니다.

결국 국립극장에서 남산까지는 두 번의 정차 끝에 올라갔습니다.

물론 기어는 1*1...

 

초가을에 또 한 번 도전했습니다.

말이 초가을이지, 흐르는 땀은 초여름이나, 한여름이나...

이번에도 무정차에는 실패했습니다.

 

해를 넘겨 지난 4월 18일 일요일 오후.

여의도공원과 한강의 자전거도로는 말그대로 인파로 미어터질게 뻔하고

별다른 생각 없이 남산이나 가볼까 하고 샛강쪽으로 나가서 한남대교를 넘어갔습니다.

 

겨우내 자출을 별로 못 해서 엔진이 더욱 더 저질이 되지나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그사이에 자전거를 다혼 카덴자에 얇은 타이어로 바꿔서인지 이번에는 남산 무정차 업힐에 성공했습니다.

에헤라 디야~~~~~~

물론 기어는 1*1...이 아니라 2*1... 가끔씩은 2*2...

 

주차장 도착 직전의 경사에서 MTB를 탄 외국인 청년 라이더와 경쟁을 했습니다.

이 청년, 왼쪽에서 추월하는 저보고 이렇게 말을 합니다.

 

"허억, 허억, 남산은 쪼깨, 허억, 힘들어요, 허억, 올라가기가, 허억, 오를 때마다, 허억."

 

저의 대답은

 

"아, 예...(어쭈 한국말을 제법 하네...) You're right. 힘들어요.(근데 지금 내가 너 따버린 거 아니?) "

 

주차장 도착 후 사진을 찍으려고 디카를 꺼내는데, 이 친구 바로 왔던 길로 다운힐-하산을 해버립니다.

나는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는데, 이 친구는 아직 하산할 체력이 남아 있나 봅니다.

그럼 그렇지, 니가 동방예의지국에서 살다보니 겸양의 미덕까지 깨우쳤구나...



주차장+휴게소에서 팔각정까지의 깔딱고개는 물론 끌바로 올라가야지요.

 

이번에는 뿌듯한 마음에 똑딱이 디카로 남산 팔각정과 남산 타워 여기저기를 찍는 여유까지 생겼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가 제 멋대로 남산의 명물 세 가지를 골라 봤습니다.

 

넘버 원!!!

철사맨s~~~









 

넘버 투!!!

자물쇠철조망~~~

우리 사이는 이제 아무도 풀 수 없어~~~ 연인들의 자물쇠 퍼포먼스~~~

남산에 자물쇠를 가지고  와서 두 사람의 이름과 사랑 다짐을 적고 자물쇠를 잠근 뒤

열쇠를 남산 숲에다 던져버리는...

어찌 보면 무지막지 무자비하고..., 어찌 보면 젊은 날의 철(?)없는 연인들만의 용감한 특권인...






외국인들도 이 대열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제발 열쇠를 함부로 던지지 말라는 남산타워 측의 부탁...

그러면서 타워 안 매점에서는 자물쇠-열쇠를 팔고 있다는...






연인들의 염장질을 고발하려는 가열찬 고발정신을 가장한 셀카질...





너는 열심히 사진 찍어라.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남산에 한 짝의 열쇠를 던지고야 말겠다...






넘버 뜨리!!!

연인들을 위한 특별 벤치...

간혹 혼자 와서 앉는 분도 있던데, 그러지 마세요... 보기 흉합니다.






남산의 묘미는 다운힐에 있지요.

비록 군데군데 도로턱이 있어서 절대 과속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지만,

그래도 서울 도심에서 이 정도라도 다운힐이 있다는게 어딥니까?


열심히 순환도로를 따라 내려와서 남산도서관을 지나 하이얏트호텔쪽으로 가려는데,

왠 준수한 청년이 저에게 남산을 어떻게 가느냐고 물어봅니다.

어제 군산에서 출발했답니다, 국도따라 서울 왔는데, 겸사겸사 남산도 한 번 올라가보고 싶답니다.

그 용기가 가상하여 직접 길 안내를 해주겠다고 따라오라고 했는데,

길이 헷갈려서 순환도로 따라 바로 남산 갈 수 있는 길을 좌측이 아니라 우측으로 잘못 안내하는 바람에

쓸데없이 끌바를 해서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습니다.

길 안내를 해주고 남산가는 다른 라이더에게 인계하고 헤어질 때 사진 생각이 나서 찍어보았습니다.





군산 청년 폼이 장난이 아닙니다...








그리고 4월 25일 일요일 아침...

오늘도 여의도는 날씨가 완전 봄날입니다.

어제 보니 군데군데 자전거 추돌, 충돌 사고더군요.

자전거 사고이고 교통체증이라 자전거 속도가 별로 나지 않아서 큰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하여간 토요일, 일요일에 한강자건거도로, 특히 여의도구간은 가능하면 피해야겠더군요.

어쩔 수 없이 오늘도 남산으로.

지난 주에 무정차 업힐을 한 기록도 있으니, 이번에는 어떨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고...

 

국립극장 가는 고갯길은 기어를 약간 높여서 2*2로 도전했습니다.

꽤나 빡세더군요.

국립극장 계단에 앉아서 쉬면서 잠시 집나간 정신을 수습하면서 보니 기어가 2*4입니다.

어쩐지 빡세더라니... 그러면 좀 더 푹 쉬었다가 남산 업힐에 도전해야지...

라고 마음을 먹은지 10분이 채 안 되어서...

한 무리의 로드 패들이 국립극장에서 쉬고 있는 저를 비웃는 듯이

국립극장으로 와서 쉬지도 않고 진정한 무정차 남산 업힐을 시작합니다.

선두는 특유의 그린+블루 색감의 비앙키.

 

아흐~~~ 저 노므들이 나를 자극하는 거야, 비웃는 거야.

 

어쩔 수 없이 엉덩이를 안장에 올리고 출발합니다.

그런데 2*4로 고갯길을 넘어온  탓인지, 쉬는 시간이 적었던 탓인지,

일주일 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헉헉댑니다.

 

겨우 도착한 주차장+휴게소...

한 외국인 아저씨가 양 손에 스틱을 들고 올라오고 있습니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니 오지리(오스트리아)에서 왔답니다.

화학(폴리에스터?)쪽 기술자인 모양인데 넉 달간 한국에 출장왔답니다.

서울 주위에는 남산 말고도 좋은 산들이 많으니 다녀보라고 했더니,

근데 서울은 공기가 너무 안 좋답니다.

 

"You're right.(그래 니네 오지리나 스위스는 공기가 참 맑아서 좋겠다.)"

 

근데, 남산이니까 먼지가 적겠지 하고 얼굴을 가리던 버프를 내리고 업힐을 했는데,

목이 영 깔깔한게, 살짝 황사였던가 봅니다.

그러니까 오지리 아저씨가 한 말이 대기오염이 아니라 황사를 말한 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산은 굳이 또 한 번 올라온 이유 중의 하나는 벚꽃때문입니다.

지난 번에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 산이라 아직 피지 않았더군요.

그러나 이 날은 산중에도 벚꽃이 제대로 피었습니다.







남산 벚꽃의 숨은 매력은 소나무의 푸른 솔잎과 화사한 벚꽃의 어우러짐입니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 벚꽃을 거느리고~~~







남산도서관쪽으로 내려오니 도서관 입구 작은 연못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무슨 좋은 풍경이 있나 하고 저도 가서 보니

연못에 떨어져 떠있는 벚꽃잎들이 제법 그럴 듯한 사진꺼리가 될 듯합니다.

 

디카를 꺼내들고, 저는 "연못의 벚꽃잎을 찍는 사람들"을 찍으려 했는데,

그 순간 사람들이 모두 사진찍기가 끝나 흩어져 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저도 남들처럼 연못에 떨어져 떠있는 벚꽃잎들을 찍었는데, 지금 보니 꽤나 볼 만 합니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데 아까 그 로드떼들이 마구 내려옵니다.

분명히 아까 주차장+휴게소에서 나보다 먼저 내려갔는데, 또 내려온다???

이 인간들이 그 사이에 국립극장으로 가서 업힐을 또 한 번 하고 온 겁니다.

 

이런 짐승들...

남산에서 열쇠 던지는 염장질보다, 니들의 염장질이 더 나쁜 거야...

다음에 남산 올 때는 내 반드시 무정차로 세바퀴를 돌아주마!!!